[Oh!쎈 초점]‘진실 환희 준희’ 스윙스, 창작의 자유와 책임 사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3.30 10: 40

[OSEN=유진모 취중한담] Mnet ‘고등래퍼’에 출연 중인 래퍼 스윙스가 고 최진실 및 유족인 최환희 군과 최준희 양을 거론한 가사에 대해 준희 양에게 SNS를 통해 “사건 이후 거의 매일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직접 만나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스윙스는 무명 때인 2010년 힙합 가수 비즈니즈의 ‘불편한 진실’에 피처링하며 “너넨 환희와 준희, 진실이 없어 그냥 너희들뿐임”이란 노랫말을 담아 거센 비판을 받자 후에 “유가족의 심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입히게 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폭발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는 ‘고등래퍼’에 출연해 지명도가 급상승하자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준희 양이 SNS에서 “예전 일이라도 화나는 건 여전하고 상처 받은 건 여전하다”고 지적한 게 촉매제가 됐다. 이 글엔 “예전의 일을 들추는 게 잘못된 건 알지만 상처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은 저와 오빠”라며 그래서 “스윙스 때문에 ‘고등래퍼’도 안 보고 웬만한 랩 분야는 잘 안 본다. 그만큼 볼 때마다 화나고, 사과 내용도 황당하다”고 덧붙였다. 남매는 중, 고교생이다.

최진실은 마흔 살 생일을 22일 앞둔 2008년 10월 2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유일한 형제 최진영은 그로부터 1년 반도 안 지난 2010년 3월 29일 같은 길을 택했다. 환희 군과 준희 양의 아버지인 조성민도 2013년 1월 뒤따랐다.
환희 군과 준희 양 남매는 최진실-조성민이란 톱스타의 자식으로 겉으론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태어났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모의 불화가 일찍 찾아왔고, 결국 이혼했다. 남매는 조 씨에서 최 씨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혼 후에도 부모는 계속 갈등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틈새가 없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할머니와 함께 엄마 역할을 해주던 삼촌에 이어 아버지까지 사라졌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연쇄적 충격을 견디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웬만한 사람은 짐작조차 힘들 것이다. 파란만장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다.
최진실은 인기를 뛰어넘을 수준의 비난과 악의적 헛소문에 시달린 대표적인 스타다. 지금이야 사이버 범죄에 대한 인식과 수사 시스템이 탄탄하지만 21세기 초반만 해도 모든 게 허술했고, 그만큼 수많은 스타들이 온라인을 통한 무차별 공격에 의한 피해에 노출돼있었다. 고 안재환의 자살에 그런 영향이 개입됐단 정황은 여러 곳에서 파악됐고, 그 나비효과가 최진실에게 작용했단 건 세상이 다 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최진실에게 남매는 악착같이 살아야하는 의미의 전부였다. 그래서 최 씨로 바꾸는 데 돈과 정력을 쏟은 것이다. 그런 엄마가 어린 자식을 두고 스스로 숨을 끊을 땐 얼마나 괴롭고 절망적이었을지는 우리는 추측만 할 뿐 피부로 체감하거나 그 어떤 수치로도 환산해낼 순 없다.
스윙스는 그 가사를 쓸 당시 만 24살이었다. 법적으론 성인이지만 사리판단에 완벽하기에 무리인 것은 맞다. 게다가 무명이다. 어떻게든 튀어서 유명세를 타고 싶은 욕망이 컸을 것이다. 힙합이란 장르적 특성상 거침없는 태도가 용납되리란 과잉된 착각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크게 두 가지를 놓쳤다. 첫째, 아무리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났다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자세와 책임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프로무대에 등단했다. 작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제는 진실의 왜곡이나 인권의 침해다. 그게 과한 치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이어진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토론은 매우 건강하고 쾌속한 지적 발달의 왕도지만 그게 말다툼이 되면 목적을 상실하고, 더 나아가 인신공격이 개입되면 가장 위험하다는 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문제의 가사엔 팩트는 있지만 그게 말장난이란 점이 결정적인 진실왜곡이다. 스윙스에게 최진실은 그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한때의 스타였던 고인일지 모르지만 남매에겐 다르다.
스윙스에게 남매 역시 생경한 고아 중 극히 일부겠지만 남매에게 과거는 지울 수 없는 대형수술의 흔적이며, 엄마는 그보다 더 진한 고통이자 꿋꿋이 살아야 하는 절대적인 당위성이다. 엄마가 스스로 먼 길을 떠난 배경 중의 하나는 자신으로 인해 내내 자식들이 괴롭힘을 당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가사는 창작이 아니라 왜곡이고, 말장난이며,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핵폭탄급 폭력이다.
둘째는 사과가 매우 늦었고, 교묘한 타이밍이라는 의심의 여지이며, 비공식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사이버공간이란 점이다. 문제의 가사를 발표할 당시 스윙스가 어렸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난 등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은 그를 단기간에 숙성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판단의 능력을 속성으로 가르쳤을 것이다. 연예계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건 샐러리맨보다 빠른 세상만사의 경험이다.
그런데 ‘고등래퍼’라는 엄청나게 파급효과가 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리고 종영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대면사과의 뜻을 SNS라는 제한적 공간을 통해 전한다는 것은 아무리 그 의도가 순수하고 절박하다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건전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준희 양이 똑같이 SNS로 누리꾼에게 “사과 받아야 하나요”라고 물어본 게 바로 동일수준에서의 해법이란 점은 참으로 절묘하다.
자기만의 심오한 세계를 가진 예술가의 대작이든, 욕설이 들어간 힙합뮤직이든, 예술적 지평이 넓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계몽적 메시지가 강하며, 그게 긍정적이고 지적이며 촌철살인의 풍자적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예술작품이나 대중문화로서의 값어치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표현의 자유와 독창성이 우선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스윙스의 가사는 인간에게-심지어는 동물에게도-본능의 가장 기초적인 사랑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무시한 채 고인과 유족을 말장난의 소재로 삼았다. 영화 ‘시간위의 집’에서 김윤진은 “신부의 신앙이 주님이라면 엄마에겐 자식”이라고 말했다. 모성애보다 더 강한 게 있다면 그건 그 엄마를 향한 할머니의 모성애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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