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센 인터뷰] ‘은퇴’ 손용석, “한계 느꼈다…지난해 가장 아쉬워”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17.04.14 10: 00

“내 한계를 느꼈다. 지난해 한 달이 가장 아쉽다.”
롯데 자이언츠 덕아웃에서 언제나 파이팅을 불어넣고 활기찬 모습을 보였던 손용석(30)의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다. 손용석은 이달 초,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롯데 퓨처스팀 전력분석원으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손용석은 지난 2006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신인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손용석은 클러치 능력을 과시하며 데뷔 두 번째 시즌인 2007년 타율 0.343(70타수 24안타) 12타점의 성적을 남기며 조커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간간이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고, 내야 멀티 요원으로 프로 무대 생존을 노렸지만, 결국 지난해를 마지막 1군 무대였다. 통산 성적은 235경기 타율 0.262(363타수 95안타) 41타점 32득점.

지난 13일, 롯데의 연습구장인 김해 상동구장에서 만난 손용석은 여전히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는 배트와 글러브 대신 노트와 영상 분석 장비가 들려있었다. 훈련 대신 선수들의 훈련 보조원 역할까지 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손용석은 특유의 밝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러나 유니폼을 벗는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뇌의 시간은 밝은 표정 속에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손용석은 “대만 캠프까지 끝내고 연습경기까지 뛰었다. 사실, 대만 캠프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은퇴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많고 내야진의 선수도 많은 상황에서 내가 계속 선수생활을 이어가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있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구단에서 전력분석원 자리를 제안했다”며 은퇴를 결정 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구단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고 손용석의 머릿속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열두 살 때부터 야구를 했고, 19년 동안 야구를 했는데, 아쉬움이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머리가 복잡했다.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니 많이 울었다”며 “은퇴가 맞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이 계속 반복됐다”고 고뇌의 시간들을 설명했다.
손용석이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아버지의 존재 때문이다. 부친인 손경구 씨는 90년대부터 약 20년 간 롯데 선수단 버스 기사로 재직했다. 오랜 기간 동안 롯데 선수단과 함께했고, 아들인 손용석도 자연스럽게 야구와 가까이 있었다. 롯데와 함께한 아버지였고,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손용석 본인 못지않게 은퇴를 아쉬워하고 속상한 이도 아버지였다.
그는 “부모님께서 모든 뒷바라지를 하셨는데, 그만둔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통보 아닌 통보를 했지만 상황 설명을 해드렸다”면서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드린 날 술을 정말 많이 드셨다. 괜찮다고 하시던데, 속상해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또래의 선수들이 전성기에 접어들 시기, 손용석은 빠른 은퇴를 택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냉정했다. 그는 “아직은 야구를 하는 거 보면 하고 싶고, 주위에서는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다”면서도 “프로에서 11년을 있다가 그만 둔 것이다. 1년 만에 왔다가 간 친구들 있고, 프로 옷을 입으려고 안달 난 친구들도 많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잘 된 것이다”면서 “내 친구들은 성장했는데 내가 못 컸다는 것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손용석이 돌아본 프로에서의 11년, 가장 아쉬웠던 때는 언제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지난 시즌을 떠올렸다. 롯데는 지난해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주전 3루수였던 황재균이 이탈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손용석이 이어받았다. 손용석에겐 1군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손용석은 공수에서 아쉬운 플레이들로 황재균의 빈 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한 달이 가장 아쉽다.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했다”면서 “지난 해는 초반에 잘 풀리길래 올해는 뭐가 좀 잘 되나 싶었는데, 그 시기 딱 현실에 부딪혔다. 실력이 안 되는 것을 느꼈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현장에서 선수들을 도와주는 것이 다행이다. 일반 회사원이라면 못했을 것이다”고 웃는 손용석이다. 아직은 선수들도 전력분석원 직함을 단 그가 낯설다. 그는 “같이 대만 캠프까지 갔다 왔는데, 선수들도 아직 대하는 것이 어색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나도 아직 업무를 배워가는 과정이고, 조금씩 영상 기기나 사무 업무를 익혀가고 있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손용석은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고, 다가가려 하고 있다. 그는 “선수별로 장단점들도 필기를 하고, 영상도 찍고 있다. 선수 개인별로 내가 찍은 영상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내가 먼저 도와주려고 한다. 이제는 야구인으로서 얘기를 해주는 것이다. 우리 팀 선수들이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역 은퇴를 선언한 손용석의 궁극적인 목표는 역시 지도자가 되는 것. 그렇기에 지금 과정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는 “평생 야구만 했기에, 평생 야구판에 있을 것 같다. 지금 전력분석원을 하면서 조금씩 야구 시야도 넓혀가면서, 선수들에게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긍정의 기운을 잃지 않고 ‘제2의 인생’에 대한 꿈을 밝혔다. /jhra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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