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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한다] "런기태가 온다고?"우여곡절 김기태호 출항기

[OSEN=이선호 기자] 2014년 가을 KIA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3년 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선동렬 전 감독이 물러나고 차기 사령탑 선임 문제가 당장의 화두로 떠올랐다. 자천타천으로 수 많은 후보들이 거론되었다. 프랜차이즈스타들 위주로 감독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구단은 최종 후보로 김기태를 결정했다. 하위 팀 LG를 맡아 11년만에 가을야구로 이끈 수완을 평가했다.

걸리는 대목이 없지는 않았다. 2014년 5월초 돌연 LG 지휘봉을 놓은 사건이었다. 팀이 전년도의 플레이오프 직행의 기세를 잇지 못하고 개막부터 성적이 바닥을 기었다. 10승23패1무.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선수들이 감독의 재계약을 위해 야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내가 그만 두어야 LG 야구가 산다"고 말하며 돌연 사표를 던졌다. '런기태'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였다. 김 감독은 지금도 자세한 내막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당시 주변에서는 고위층의 지나친 흔들기였다라는 추측만 무성했다.

진위야 어떻든 KIA구단은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시 KIA에 와서도 비슷한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만나서 "왜 그랬어요?"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고민을 거듭해도 김 감독의 장점을 외면할 수 없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선수 시절부터 정평이 나있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주장으로 후배들을 이끌고 동메달을 따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타격코치로 금메달을 빚어냈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이 한국인 김기태 코치를 육성군 감독으로 발탁한 이유였다.

구단은 난파선이나 다름없는 KIA호의 재건을 맡을 적임자로 김기태를 결정했다. 구단은 신속하게 그룹의 재가를 받았다. 당시 김기태 감독은 타 팀의 2군 감독 제의를 받아놓고 있었다. 감독으로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 KIA 구단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광주의 한 호텔 방에서 만나 부임 요청을 제의받고 두말없이 수락했다. 연봉은 2억5000만 원. 구단은 곧바로 계약 사실을 발표했다.



광주일고 출신인 김 감독은 고향팀 타이거즈와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해태가 아닌 쌍방울의 지명을 받았다. 김응룡 감독이 동대문 야구장을 찾을 정도로 욕심을 냈지만 코치들이 반대했다. 현실적으로 김성한, 이건열 등 1루수 자원이 겹쳤고 좌타자 박철우도 있었다. 김기태는 요미우리 코치 시절에도 KIA구단의 타격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KIA도 이미 김기태의 평판과 능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결국 세 번째만에 고향팀과 인연을 맺었다. 김기태 감독의 부임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일부 팬들은 "런기태가 온다고?"라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대체로 "LG에서 소통과 리빌딩으로 성적을 냈으니 KIA에서도 잘할 것이다"라고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새 감독과 새 KIA야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구단은 선수단 운영에 관련해 감독에게 전권을 맡기고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감독의 능력을 믿고 힘을 실어주었다. 구단의 기대대로 팀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성적으로 답했다. 첫 해는 4강 싸움, 두 번째 해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세 번째 시즌은 힘겨웠지만 끝까지 버텨내 정규리그 우승을 지켰다. 그리고 3연패를 노리는 두산을 꺾고 대망의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루었다. 김 감독은 잠실구장의 팬들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 헹가래를 받으며 영광을 만끽했다. 정규리그 우승하고 울더니, 한국시리즈를 마치고도 코치들과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시상식을 마치고 감독실에서도 눈물을 또 흘렸다.


김기태 감독의 최대 실적은 KIA야구의 체질을 바꿔놓은 것이었다. 선수들의 마음을 잡아 끈질기고 투지 넘치는 팀으로 변신시켰다. 소통과 믿음을 바탕으로 '동행야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2017년 4월과 7월 두 번의 빅트레이드를 주도해 우승팀 전력으로 바꾸어놓았다. 구단은 김기태 감독의 수완을 인정해 3년 20억 원의 특급 대우에 재계약했다. 김기태호는 집권 2기의 항해를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외부 보강은 없다. 내부 전력을 극대화시켜 세대교체의 물줄기를 내는 과제를 안았다. 정점에 오른 김기태 야구는 또 한 번의 시험대에 오른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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