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인디살롱] “배운게 그림과 음악뿐”인 정밀아의 농밀한 2집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7.11.29 14: 33

정밀아(39)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나온 미술작가이자 지난 10월31일 정규 2집 ‘은하수’를 낸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배운 게 그림과 음악뿐인” 그런 사람. 개인전이 22일 서울 성북동의 갤러리 17717에서 오픈해 12월3일까지 계속되고, 2집의 디지털 음원이 바로 어제(28일) 각 음악사이트에서 공개됐다. 일상의 찰나를 섬세하게 포착, 노래해온 정밀아의 과거와 현재가 타이틀곡 ‘별’을 비롯한 10곡에 오롯이 담겼다. 미러볼뮤직과 공동 기획한 [3시의 인디살롱]의 이번 주인공은 그래서 정밀아다. 
= 반갑다. 1집 ‘그리움도 병’ 때보다 시적 감수성이 더 세진 것 같다. 음수도 더 많아졌고 풍성해졌다. 녹음이나 믹싱, 마스터링 자체의 완성도도 높다. 
“그런가?”

#. 이번 2집은 1집 ‘그리움도 병’(2014년) 이후 3년만에 발표됐다. 나태주 시인의 시로 곡을 쓴 10번 트랙 ‘꽃’을 제외한 9곡을 모두 정밀아가 작사한 것은 물론 전곡을 작곡편곡에 프로듀싱까지 했다. 기타는 조영덕 이호석 왕우람, 베이스는 구교진 전창민, 드럼은 신동진 서주영, 피아노는 성기문. 녹음과 믹싱은 스튜디오로그(StudioLog. 민상용), 마스터링은 소노리티 마스터링(Sonority Mastering. 이재수)에서 했다. 앨범 재킷(위 사진)? 물론 정밀아가 맡았다. 
= 고향이 포항이다. 이번 지진으로 집에 피해는 없었나. 
“무사했다. 포항에서 나고 19살 때까지 자랐다.”
= 개인전은 어떤 내용인가. 
“개인전 타이틀은 ‘그리기 쓰기 부르기’라고 내 블로그 제목과 동일하게 지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작가작업을 안했다. 졸업하고 음악을 하기 전까지 그 사이의 작업물들을 모았다. 1집이 내 옛날 얘기를 털어낸 느낌이었듯이, 이번 전시도 중구난방으로 해온 작업들을 마찬가지로 털어버리려 했다. 아무래도 자기치유적인 경향이 있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자기치유의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그 다음 것들을 못할 것 같았다.”
#1. 이쯤에서 정밀아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해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던 정밀아는 98학번으로 한국예종에 입학했다. 음악동아리 ‘AMA’에서 만난 영화과 친구(미미시스터즈의 작은미미)와 1년 과 후배(굴소년단의 김혜린)로 ‘물체주머니’라는 3인조 밴드를 만들어 졸업후에도 잠시 활동했다. 그때는 보컬이 아닌 건반과 송라이팅을 맡았다. 이후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전전하다가 2008년부터 본격적인 음악창작작업에 몰두했고, 2011년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 첫 무대는 2012년 6월 언플러그드 카페 오픈 마이크. 이 곳에서 ‘그리움도 병’, ‘내 방은 궁전’ 2곡을 불렀다. 2014년 10월에 1집 ‘그리움도 병’, 2016년 4월에 싱글 ‘꽃’, 2016년 12월에 싱글 ‘사는게 니나노’, 그리고 2017년 10월에 2집 ‘은하수’를 냈다. 
#2. 아, ‘정밀아’는 2008년 처음 페이스북에 가입했을 때 사용했던 가짜이름으로, 원래는 자신이 미술작가가 되면 예명으로 쓰려고 장난 삼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본명은 정미라. 본인 말로는 “별뜻없다. 본명 쓰기는 부끄럽고 해서 그냥 정밀아를 썼다. ’밀’자 들어가는 단어치고 안좋은 것들이 없다. 은밀, 친밀, 농밀 등등”. 2012년 홍대신에 나오자 사람들이 “어떻게 연락하면 되느냐?”고 해 “페북으로 연락 주시라”고 해 ‘정밀아’가 진짜 뮤지션 이름이 돼 버렸다. 
= 새 앨범을 함께 들어보자. 1번 트랙 ‘노래가 흐른다’를 듣는 내내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가 떠올랐다. 
#. ‘노래가 흐른다’ 가사 = 저녁 무렵 비가 내린다 나는 우산이 없는데 한방울 두방울 흩날리더니 금세 거세진 빗줄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몇번의 길을 건넌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흐르는 무심한 마음 오늘 그 누구도 내게 수고했다 그런 말들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오늘을 살았다 지친 어깨를 지고서 버스에 몸을 싣는다 피곤이 밀려오고 내 귀엔 노래가 흐른다
“1집을 낸 직후에 만든 곡이다. 공연에서 엄청 많이 불렀다. 회사 다닐 때 퇴근후 홍제동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환승을 해 버스를 타야 했다. 비오는날 버스를 탔는데 승객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이어폰으로) 뭔가를 듣고 있더라. 순간 ‘저들에게 노래는 무엇일까.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을텐데 그나마 낫게 있으려고 저렇게 음악을 듣는 게 아닐까’ 싶더라. 노래가 버스 안에서 마치 안개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2009~2010년의 경험을 2014년에 노래로 만든 셈이다. 기타는 이호석이 쳤다.”
= 2번 트랙 ‘봄빛’에선 ‘자비 없는 세상 위로 공평하게 쏟아지는 이 봄빛을 빼앗지 마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마감은 지난 6월에 한 곡이다. 인터넷에 떠돌던, 싱크대 위에 냉장고가 올라가 있고 바로 옆에 변기가 있는 말도 안되는 원룸 주거환경 이미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쪼개서 임대해 월세 받아가고. 반지하에서 살았던 나 역시 이런 느낌을 잘 안다. 바깥에 나가면 따뜻한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공짜로 즐길 수 있는데, 이것마저 빼앗아 가면 약자들은 어떻게 사나, 이런 소심한 절규를 담았다. 가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아등바등 최선을 다하자, 이런 내용이다. 비슷한 감정, 같은 결을 가진 곡이 (1집에 실렸던) ‘겨울끝’이다.”
= 반지하 얘기를 담은 게 ‘내 방은 궁전’이었다. 
“그러고 보니 ‘봄빛’은 장르만 살짝 바꾼 게 돼버렸다(웃음). 3집에서는 주거환경에 대한 노래는 안써야겠다(웃음). ‘내 방은 궁전’은 사실 ‘빡침’에 관한 곡이다.”
= ‘달 가는 밤’(..우리 사랑이란 길을 잃은 눈동자..)은 어떤 곡인가. 
“권태로운 사랑의 중간쯤을 노래한 곡이다. 사랑은 시작은 아름답고 끝은 괴롭고 아프다. 그 중간의 애매모호한, 사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권태에 대한 노래다. 조영덕이 기타로 열일을 했지만, 좀더 먹먹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0.3% 아쉬움이 있다. 오라버니들과 자주 가는 망원동 술집이 있는데, 합주를 담은 녹음을 들려주니 ‘우와, 길을 잃은 눈동자래. 마셔’라고 하더라. 웃겼다.”
= 타이틀곡은 ‘별’이다. 
#. ‘별’ 가사 = 새벽 검은 하늘 아래 우린 외로운 사람들 이렇게 엉킨 길 위를 하염없이 헤매지 이 길고 긴 여행이 끝이 있긴 할거야 어쩌면 조금 짧을지 몰라 그러나 그리 나쁠 건 없네 우린 모두 별이 될 거야 이 세상을 떠나면 바슬바슬 거리는 은하수 빛이 되어 하늘을 날거야 저기 저기 아슬거리는 은빛 너를 찾으면 우리 서로를 끌어안고 더 환한 빛이 되어 여기 어둠을 지워내볼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가장 포괄적으로 담은 것 같아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예전 늦겨울인가 이른 봄에 일터를 가려는데 할아버지가 혼자서 하염없이 홍제천을 바라보시더라. 왠지 평생을 저렇게 순진하고 꾀 안부리고 열심히 사셨을 것 같았다. 이런 분들은 죽어서도 또 남은 사람들을 위해 뭐 해줄 게 없나, 별이 되어 밑에 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실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온갖 상상을 했다.”   
= ‘그런 날’(..내가 이리 살아있구나 숨 쉬는 게 부끄러운 하루다..)의 이 악기는 첼로인가. 그리고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콘트라베이스다. 이 곡에서 갑자기 정색하고 분위기를 전환해 청승맞게 가고 싶었다. 콘트라베이스는 판소리에서 고수 느낌이 나도록 디렉을 했다. 드럼 역시 치지말고 소음만 내달라고 했다. 다들 재즈 하시는 분들이라 그런 느낌을 잘 살려주셨다. 마디마디 끊어갈 수 없어 ‘구다리’ 통으로 갔다.”
= ‘애심’(..무슨 말들이 필요하겠어 그대 두 눈에 하늘을 보네..)은 달달한 사랑 노래다.    
“실제로 단공 때 이 곡을 들으신 분들이 3명이나 자신들의 결혼식에 축가로 불러달라고 요청하셨다. 앨범에 꼭 넣어달라는 메시지도 받았다. 초기에 만든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소박한 상을 사이에 두고 내일의 안녕을 기도하는 밤’ 이 대목이 좋다. 드러머가 리듬을 잘 이해해줘 고마웠다. 디렉을 해준 후 딱 3번 해보고는 ‘이거 아녜요, 누나?’ 하더라. 신동진이라고, 재즈를 정말 잘 하는 친구다. 남자 목소리는 (기타를 치는) 이호석이다. 7월말 함께 공연을 하며 듀엣곡을 했는데 둘이 잘 맞더라. 원래 휘파람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이호석을 쓰자’ 해서 바로 전화했다(웃음).”
= ‘미안하오’(..어느날 저녁쯤엔 지는 해 등지고서 긴 그림자 드리운 이 그대라면 좋겠소..)는 왠지 가슴이 짠하다. 
“사연이 있는 노래다. 실제 공연에서 부르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노래가 긴데다 워낙 개인사연이 듬뿍 들어간 노래라 주의해서 불러야 할 것 같다. 노래할 때 감정이 들어가면 안되니까. (정밀아는 ‘개인 사연’이 뭔지 얘기해줬지만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개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대중음악에 담아도 되나’, 이런 고민이 있지만 ‘내 노래 내가 만들어 내가 위로받아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도 있다. 어쨌든 사운드는, 지방의 초라한 재즈클럽에서 사연 있는 여가수가 본무대를 끝낸 후 좀 취해서 노래를 부르는 그런 느낌으로 만들었다. ‘기타를 완전히 처량하게 쳐달라’고 했는데 조영덕씨가 이를 기막히게 알아들었다.” 
= 9번 트랙 ‘심술꽃잎’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다가온다. 왠지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과도 오버랩되고. 
#. ‘심술꽃잎’ 가사 = 며칠밤 가면 올 거야 널 미워해서가 아니야 바쁜 일 지나면 얼른 올게 그땐 집으로 가자 할머니 손잡고 가볼까 큰 나무가 있는 시골집 새벽 첫차 타고 시장도 가보고 언덕너머 숲에도 가보렴 음- 바람이 불어 풀잎 파도가 일고 종일 지친 땅은 하루 머금은 더운 숨 고르고 ​낮에 나온 하얀 달에 불이 켜지면 엄마의 노래가 그리워 눈물참고 돌아오는 도랑 길 옆에다 심술 부려 날려본 꽃잎 흙먼지 날리는 길 위를 한참이나 바라 보다가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올 거야 나를 데리러 올 거야​ 음- 바람이 불어 구름 밀려나가고 텅 빈 하늘 위엔 집으로 가는 새들이 지나고 산 그림자 길어지는 저녁이 오면 엄마의 노래가 그리워 눈물참고 돌아오는 도랑 길 옆에다 심술 부려 날려본 꽃잎
“99.3% 다 실화다. 아주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고 3형제가 중 내가 중간이고 하니까 (할머니 댁에 맡기기에) 무난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 그 꼬맹이, 버려진 느낌을 받았던 그 꼬맹이가 내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잘 달래서 떠나보내야겠다 싶었다. 지나친 자기연민은 극혐이지만, 나 혼자만의 얘기는 아닐 것 같아 노래로 만들었다. ‘심술 부려 날려본 꽃잎’은 강아지풀일 수도 있고, 코스모스일 수도 있고, 큰 덩치로 자란 국화일 수도 있다.”
= 마지막 트랙 ‘꽃’(..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은 앨범 버전으로 다시 실렸다. 
#. “꽃’은 2016년 4월 싱글로 나온 곡으로, 제26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인 나태주 시인의 ‘꽃2’에 선율을 붙인 노래다. 
“하몬드 오르간 연주자 성기문씨가 지인들한테 뿌린 비공개 CD를 우연찮게 입수해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지난해 싱글 때 부탁했는데 노래가 너무 부드럽고 거룩하다며 거절하셨다. 그래서 싱글 ‘꽃’은 기타 연주로 갔다. 이번 앨범 때 또 부탁을 드렸는데 ‘알았다. 합시다’ 해주셨다. 곡 해석을 많이 해오셨다. 성기문씨와 나, 믹싱 엔지니어가 만난 자리에서 그냥 원테이크로 녹음했다.”
= 지금까지 친절한 코멘터리 감사드린다. 연말연시 계획은.
“12월에 네이버 온스테이지, 1월에 EBS 스페이스 공감 및 단독공연이 잡혀있어 개인전이 끝나면 곧바로 합주에 들어간다. 봄이 되면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싶다. 1집 때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정밀아는 음악을 갖고 잔망스럽게 뻘짓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에게 위로니 뭐니 필요없고, 내 노래들이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수고하셨다.”  
/ kimkwmy@naver.com
사진=박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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