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들에게 얻은 교훈, 나주환이 다시 뛴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2.12 15: 31

지난 1월. 천안북일고 등 몇몇 고교 선수들이 주축이 된 연합 캠프에는 땀 냄새가 가득했다. 프로 및 대학 진학을 앞둔 선수들이 따뜻한 대만에서 강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때 이 선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고교 선수는 아니었다. 나주환(33·SK)이었다.
나주환은 당시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잦은 부상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을 추월하거나 추월하기 일보 직전인 후배들이 있었다. 다시 뛰었지만, ‘나이’라는 선입견과 ‘리빌딩’ 혹은 ‘육성’이라는 구호를 넘기가 쉽지 않았다. 2015년은 96경기, 2016년은 24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렇게 나주환을 사실상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그때 찾은 곳이 바로 대만이었다. 그리고 대만에서 목격한 광경은 나주환의 야구 인생을 바꿨다.
나주환은 “이종호 북일고 감독님께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수비 코치셨다. 당시 내가 고등학생일 때 진로 결정에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이라면서 “SK 2군에도 계셨는데, 북일고 감독으로 가시면서 부르시더라. 후배들의 훈련을 도와주면서 운동을 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는데 일단 가기로 결정했다”고 떠올렸다.

대만에서 기술적으로 확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나주환은 “특히 3학년 진학생들이 엄청나게 절박한 심정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주환은 “나도 3학년 올라갈 때는 저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 출장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태해지지 않았나 반성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라고.
절박함을 되찾은 나주환은 올해 반등했다. 만약 공식적인 올해의 재기상이 있었다면, 나주환은 유력후보였을 것이다. 나주환은 올해 122경기에서 타율 2할9푼1리, 19홈런, 65타점을 기록했다. 전성기 시절보다 오히려 더 나아진 공격 지표가 있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이는 나주환의 야구인생 중·후반을 확 바꿨다. “올해까지 안 되면 은퇴를 할 생각이었다”고 했던 나주환은 이제 SK의 내야에서 중요성을 되찾았다.
나주환은 당시 대만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초반에 운도 많이 따랐다. 오래간만에 경기에 나가면서 오히려 편안한 느낌이 들더라. 그것이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시즌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한 해를 총평했다. 나주환은 11월 한 달 동안 부상을 당했던 종아리 부위의 치료에 전념하면서 회복훈련을 했고, 잠시의 휴식기를 거쳐 다시 뛸 준비를 마쳤다.
기술적으로도 많은 것을 바꾸려 노력하는 선수지만, 결국 올해의 반등은 생각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선수 스스로가 대만에서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다. 나주환은 “어릴 때는 경기에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캠프에서도 훈련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후배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실수 하나, 나태해진 모습 하나를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랬던 나주환은 다시 대만에 간다. 이번에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껄껄 웃는 나주환이다. 올해 성적으로 체면도 많이 세웠다. 나주환은 “후배들에게 줄 선물을 많이 들고 갈 생각”이라고 밝게 웃었다. 그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올해부터는 마음의 짐도 많이 내려놨다. 오히려 그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서른을 훌쩍 넘긴 시점에 깨달았다.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나주환이다.
나주환은 “예전에는 하던 대로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좀 더 야구를 즐기게 된 것 같다. 내년에도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해보자는 생각”이라면서 “지금부터는 내 인생의 보너스 게임이다. 롱런하고자 하는 목표는 당연히 있지만, 덤비면 더 안 좋은 쪽으로 흐르게 되더라. 쫓기면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가 보겠다”고 말을 맺었다. 후배들과 함께 할 다가올 캠프가 이런 나주환의 생각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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