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선을넘는녀석들' 아픔의 땅 멕시코, 잊혀져선 안 될 '비극'의 역사
OSEN 김수형 기자
발행 2018.04.14 07: 05

멕시코, 절대 잊혀져선 안 될 비극적인 역사의 땅이었다.  
13일 방송된 MBC 예능 '국경초월 세계여행-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멕시코 편이그려졌다. 
이날 멕시코에 살고 있는 한인들과 자리를 마련, 멕시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한인들은 "기회의 땅이라 한다"면서 "스페인보다 일자리가 많아 중남미 쪽으로 눈을 돌린다, 미국과 가까워 한국기업 많다"고 전했다.  특히 현지인 최저임금은 낮지만 한국인에겐 높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대학등록금 역시 국립대학은 50원에서 2천원 정도한다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반면에 사립은 몇 천만원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말해 또 한번 놀라움을 안겼다. 

이제 설민석 강사를 만날 시간이 다가왔다. 무수한 박수세례를 받으며 설민석 강사가 등장, 팬미팅 분위기 수준으로 모두 뜨겁게 그를 맞이했다.  설강사는 "23년간 한국사를 강의해온 설민석이다"라면서 역사의 신답게 비장한 모습으로 자신읠 소개, 이어 사상최초로 멕시코에서 강의가 시작됐다. 
강의의 주제는 '1세대 멕시코 이민사'였다. 120년 전, 러일 전쟁으로 실업률이 높았을 때 당시 '묵서가'라 불린 멕시코 땅에서 일자리 공고가 났다는 것. 흉흉했던 국내정세 때문에, 딱 1번 모집에 천명이 지원할 정도로 전국에 지원 열풍이 불었다고 했다.  
당시 이주민들은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리라 기대했지만, 희망의 배가 아니라 절망의 배였다. 지상낙원을 기다렸던 기대와 달리 달콤한 꿈이 악몽이 됐다는 것. 알고보니 노예시장에 팔려온 꼴이었다는 이유였다. 
설강사는 "에네켄이란 선인장 농장으로 모두 끌려갔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17시간 혹독한 노동을 했다"며 당시 노예같은 생활을 버텨야했던 실제 한인의 증언을 덧붙였다. 장갑이 찢겨 피범벅이 되도록 소와 말같은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설강사는 "그래도 절망 속에서 꿈이 있었다, 꿈이 없으면 죽는다"면서 계약기간 4년을 버티면, 고국으로 돌아가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꿈이 그들을 살게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계약이 끝난 뒤인 1910,년 나라가 일본에게 뺏겨 갈곳이 없어졌다는 것. 자유가 된 몸이었지만 고국은 자유를 뺏긴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조국을 원망하지 않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나섰다. 당시 독립을 위해 하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국민회'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었다. 설강사는 "미국 독립 운동의 아버지다 "며 멕시코로 내려와 독립 운동에 불을 지폈다고 전했다.
안창호 선생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위와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한 군사학교 설립, 멕시코 한인들은 우리의 얼을 지키기 위해 국어, 역사 교육에 힘썼다.  이후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소식이 전세계에 퍼져 멕시코에도 열기가 이어졌다. 3.1운동 직후 멕시코 교민들 역시 전 재산의 1/20을 갹출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전달했다.  '기미 독립선언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며 전세계에 고국의 참상을 전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멕시코 교민들의 노력이었다.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번 돈을,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두 전달한 교민들에 대해 설강사는  "돌아갈 수 없었지만 고국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영웅이었다"며 120여년전 벌어진 슬픈 역사를 언급, 그 당시 시대가 빚어내고, 그들이 겪은 비극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아픔을 시작으로,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교민들, 마침 오늘 4월 13일은 임시정부 수립일이다. 강의 날은 3월 1일이었다는 것.  몰랐던 멕시코 땅에 스며든 얘기를 듣고 난 교민들은 "뜻 깊은 날 들은, 뜻 있은 강의였다"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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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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