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타격폼 수정, 김동엽은 몸부림치고 있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8.05.26 06: 18

“(한)동민이는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는 타자다. 시간이 지나면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김)동엽이는 조금 다르다. 아직은 스윙이 미완성인 타자다”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5월 들어 부진에 빠졌던 한동민과 김동엽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동민은 이미 자신의 스윙매커니즘이 확실한 만큼 타이밍만 맞으면 금세 올라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반면 이제 프로 3년차인 김동엽은 여전히 오락가락한다는 게 정 코치의 진단이었다. 실제 김동엽은 레그킥을 버리고 노스탭이 정착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정 코치는 타격폼 완성까지 “3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코치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한동민은 23일과 24일 넥센과의 2연전에서 홈런 5방을 몰아치며 확실한 상승세를 알렸다. 그러나 정 코치는 웃을 시간이 없었다. 한동민의 활약으로 한숨을 돌리자, 머릿속에는 김동엽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이 우타거포의 반등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 정 코치는 23일 경기가 끝난 뒤 “동엽이의 타격폼을 조금 바꿔볼 생각”이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시즌 초반 엄청난 홈런 파워를 선보이던 김동엽은 5월 들어 상대의 유인구 승부에 크게 고전했다. 김동엽에게 정직한 승부를 거는 바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보니 생각이 많아졌고, 오히려 자신의 장점까지 반납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레이 힐만 감독은 “너무 생각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안 맞으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정 코치는 24일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김동엽을 불러 타격시 발의 위치를 수정하자고 제안했다. 김동엽은 타격시 양발이 수평이 되는 스퀘어 스탠스였다. 그런데 정 코치는 오른발을 조금 뒤로 뺀 클로스드 스탠스를 제안했다. 정 코치는 지안카를로 스탠튼(뉴욕 양키스)의 타격에서 영감을 얻고 있었다.
김동엽이 정교한 배트 컨트롤로 승부하는 타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시즌 중에 타격폼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김동엽의 장점을 살리자는 구상이었다. 김동엽은 어깨가 빨리 열리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아예 왼발을 타석 쪽으로 두면서 왼 어깨를 잡아두겠다는 구상이었다. 이 경우 밀어치기에 다소간 약점을 보일 수 있으나 정 코치는 “차라리 지금 상황에서는 바깥쪽 공도 잡아당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워낙 힘이 좋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최선이다기보다는 차선에 가까웠다. 그러나 재능이 있는 까닭일까. 김동엽은 예상보다 빨리 적응하고 있다. 25일 인천 한화전에서는 멀티히트를 쳐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공을 봤고, 타이밍을 잘 맞췄다. 좀 더 공이 앞에서 맞아 나갔다. 몸쪽 공에 약점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오히려 샘슨을 공을 받아쳐 좌측 폴대를 살짝 빗나가는 대형 파울홈런을 만들기도 했다. 정 코치는 경기 후 “내일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처럼 김동엽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이다. 타격이 하락세에 빠지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 미친 듯이 쳐보기도 했고, 아무도 없는 덕아웃에서 홀로 타격폼을 잡아보기도 했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부친과 타격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뚝뚝 떨어지는 타율은, 적극적인 스윙이라는 김동엽의 매력까지 앗아갔다.
정 코치의 제안은, 그래서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더 떨어질 타율도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게 김동엽의 각오다. 다행히 약간의 타격폼 수정으로 반등의 실마리를 찾은 모습이다. 25일에는 공격이 잘 풀리자, 수비와 주루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으로 숨은 MVP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동엽도 경기가 끝난 뒤 모처럼 웃었다. 바깥에서는 잘 알기 어려운 김동엽의 몸부림은 오늘도 계속된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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