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인디살롱] 사뮈, 염세라는 노랫말을 카뮈처럼 겨누다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8.11.07 14: 31

[OSEN=김관명기자] 싱어송라이터 사뮈의 노래들을 듣다보면 그의 끝모를 염세주의에 가슴마저 철렁인다. ‘맘 둘 곳 없는 거리에서’(거리에서), ‘오늘 따라 태양은 나를 짓누르지만’(오늘따라), ’주머니에 잡히는 건 빈 곽과 라이터 뿐’(찌그러진 동그라미), ‘무력감에 나는 결국 무릎을 꿇나’(버닝). 이 가을 아니면 나오기 힘들었을 그런 노래들이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낮고 굵다.
그런데 묘하게 중독적이다. 예전 봄여름가을겨울이나 안치환 노래를 들으며 희망을 찾던 그 때처럼, 사뮈의 노래에는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애절한 몸부림이 있다. ‘나약한 나의 열망은 그래도 눈동자만은 빛났거든요’(찌그러진 동그라미)라든가, ‘혹시나 내게 다시 돌아와준다면 그땐 정말로 진심을 다할게요’(마음은 여러개가 있지) 같은 가사가 결정적 증거다. 곡을 받쳐주는 사운드 역시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스스로를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사뮈를 만났다.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노래 한 곡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 땅의 그 모든 선량하고 성실한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었다. [3시의 인디살롱]은 이런 뮤지션들을 격하게 환영한다. 

= 반갑다. 10월31일 새 EP ‘마음은 여러개가 있지’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1번트랙 ‘작아질까’가 좋았고, 사운드 아니면 오디오적 쾌감으로는 5번 트랙 ‘버닝’이 좋았다. 6곡을 꽉꽉 눌러담은 느낌이다. 
“고맙다.”
= 우선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저는 사뮈라는 이름으로 노래하고 있는 93년생 여민환이다. 과거의 기억들로부터 시작되는 가사들을 적고 있고, 제 개인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르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제가 하고픈 이야기와 어울리는 음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기타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고 있다.”
= 사뮈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법률용어에 ‘퍼슨즈’(persons)가 있다. ‘여러 사람들’이라는 뜻이지만 ‘5인용’(for 5 persons)이라는 예처럼 이 단어에는 ‘개인’이 담겨있다. 그래서 좋았다. 검색해보니 ‘Three Persons’(삼위일체)라는 말도 있더라. 제가 기독교 신자이기도 해서 사뮈라고 지었다.” 
= 사뮈, 프랑스 소설가 카뮈가 떠오른다. 
“맞다. 그런 의도도 있었다. 사뮈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마침 카뮈의 ‘이방인’을 읽은 지 별로 안됐을 때였다.”
= 기타는 언제부터 쳤나. 
“초3 때 처음 배웠고 취미로 시작한 것은 중2 때 교회에서 반주를 하면서부터였다. 서울실용음악학교(현 서울실용음악고) 때는 베이스 전공이어서 ‘다브다’라는 팀에서는 베이스를 연주했다. 현재 기타는 페르난데스 리바이벌 텔레캐스터와 실버톤 2대를 쓴다. 둘 다 빈티지 느낌이어서 좋다. 펜더 빈티지는 너무 비싸서 못쓰고 있다.”
= 음반 데뷔는 2016년 12월21일에 EP ‘새벽 지나면 아침‘으로 했다. 데뷔과정을 자세히 들려들라. 
“다브다 활동하던 중간에 입대를 했다. 군대에 있으면서 전역 이후 뭘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가 잘 생기거나 아주 노래를 잘 하는 것이 아니어서 기타나 베이스로 그 욕구를 해소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 사뮈라는 이름을 지었고 전역하면 사뮈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휴가 때 사운드클라우드에 기타와 보컬로 녹음한 데모를 올렸는데 많이들 좋아해주셨다. 2016년 1월7일 전역후 다브다를 그만 두고 사뮈 앨범을 준비했다. 해를 넘기고 싶지 않아 그 해 12월21일에 데뷔EP가 나오게 된 것이다. 6곡 중 4곡은 군대 있을 때 쓴 곡이다.”
#. 사뮈의 디스코그래피는 다음과 같다.
= 2016년 12월21일 EP 새벽 지나면 아침 : 나의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같은 시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 신호, 새벽 지나면 아침, 인생은 짧어, 비가 와서 그런지
= 2017년 5월18일 싱글 춘몽 : 밤이 오겠지, 춘몽
= 2018년 4월19일 싱글 찌그러진 동그라미 : 찌그러진 동그라미
= 2018년 10월31일 EP 마음은 언제나 여러개가 있지 : 작아질까, 오늘따라, 거리에서, 찌그러진 동그라미, 버닝, 마음은 언제나 여러개가 있지
= 데뷔 앨범 반응은 좋았나. 
“기대가 컸는데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음원 나오고 3개월 후에 들어보니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이후에 앨범을 내면 더 가볍게 해야겠다 싶었다. 반응이 너무 없어 힘들었다. 다행히 싱글 ‘춘몽’ 이후 반응이 서서히 오고 있고, 선공개한 ‘찌그러진 동그라미’에서는 반응이 더 올라갔다.”
= 신작 앨범 이야기를 해보자. 굳이 10월31일에 낸 이유가 있나. 
“원래 생각했던 발매일은 10월10일이었는데 문제가 좀 생겨 미뤄졌다. 어쨌든 여름과 어울리는 음악은 아닐 것 같아 10월 안에는 나와야 이 시기에 오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재킷 디자인은 누가 했나. 
“친한 친구이자 매직스트로베리 디자인팀에서 일하는 김 에테르가 해줬다. 사뮈 활동 이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데, 곡들을 들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직관적으로 그린 다음 그것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한다.”
= 첫 곡은 ‘작아질까’다. 기타 소리가 소프트하다.
“어렸을 때부터 록을 많이 들었지만 20대가 되면서 (기타 소리가) 편안하게 나오는 것 같다. 더욱이 과격한 느낌보다는 어느 정도 무력감이 드는 가사이기도 하고.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고 싶어 소프트한 기타 라인이 나온 것 같다. 곡은 이 세상과 이 사회가 거대해보여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상황을 담았다. 회사 다니는 말단 직원들도 이런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버거울 때, 언제 좀 편해질까 싶을 때, 이런 이야기. 제가 염세적인 포인트가 있는 사람이다.”
= 왜 1번 트랙에 배치했나. 5번 트랙 ‘버닝’ 같은 곡은 완전 무아지경에 빠지게 만드는 곡인데. 
“6곡 중에서 꽤 가벼운 편이라 듣기 부담 없을 것 같아 맨 앞에 실었다. 스무드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감정 자체도 과격하지 않고. 사실은 ‘버닝’ 같은 곡을 좋아한다. 공연할 때도 재미있을 것 같다.”
= 2번 트랙 ‘오늘따라’가 타이틀곡이다. 원래 이렇게 목소리 낮았나.
“이 정도로 톤이 낮지는 않다. 하지만 뎁스(깊이)가 많을 때 곡이 좀더 드라마틱해지는 것 같더라. 또한 제 음악이 전반적으로 쌀쌀한 계절과 날씨에 어울린다. 여름에 들어보니 많이 덥더라(웃음). 이 곡의 기타 라인은 모두 현재 나이브사인(Naivesign)이라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유동혁이 맡았다.”
#. ‘오늘따라’ 가사 = 되돌릴 수 없다는 거 나도 알아 다시 쌓을 수 없는 거 나도 알아 / 우린 마주 앉아 너는 말하고나는 너를 보고 마지막 말을 기다리는데 / 그립다는 말하기 싫은데 볼 수 없을 때 그럴 때나 하는 말인 거 그런 거잖아 / 나는 아직 널 보낼 수 없는데 너의 눈을 바라보고 싶은데 / 오늘따라 왜 하늘은 낮고 맑은지 끝을 보는 내 맘이 왜 이리 후련한지 / 오늘따라 왜 태양은 날 짓누르는지 널 겨누는 내 눈이 떨리는지
= ‘오늘따라 왜 하늘은 낮고 맑은지’. 왜 맑은데 낮을까.
“가을하늘처럼 맑긴 맑은데 답답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방인’에서 메르소가 해변에서 총을 쏘는 그 장면이 기억나기도 했다. 메르소는 태양이 뜨거워서 총을 쐈다. 그래서 마지막에 ‘겨누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 아, 그런 맥락이 있었구나. 역시 뮤지션 코멘터리는 이래서 재미있다. 
“마스터링을 하면서 ‘버닝’(3분52초)이 가장 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짧아 놀랐다. 이 곡(5분43초)이 가장 길다.”
= ‘거리에서’. 김광석 노래 제목과 똑같다. 
“성시경 노래도 있다. 주위에서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에서’로 내지 않으면 안되겠더라. 밤거리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데 ‘거리에서’ 말고는 없었다. 드럼은 황영준이라는 친구인데, 베이스 칠 때 학교에서 만났다. 그 친구가 제 음악을 좋아해줘서 함께 해오고 있다.”
= ‘찌그러진 동그라미’, 무슨 뜻인가. 
“이 곡은 김창완씨가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사연에서 시작됐다. 너무 힘들고 지친 일상을 담은 사연에 대해 김창완씨가 이러더라. ‘동그라미를 20개 그려보세요. 아마 그럴싸한 동그라미는 2개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찌그러졌을 겁니다. 하지만 찌그러졌다고 해서 세모나 네모라고 하겠어요? 그냥 찌그러진 동그라미일 뿐입니다’. 매일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있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는 뜻인 것 같다. 저는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포장하기가 어렵다. 이런 염세적인 포인트가 저는 편하다. 염세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은 다르다.”
= ‘버닝’은 곧바로 보컬이 치고 들어간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악기 도입 없이 곧바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희 세대, 또래 친구들을 보면 편하게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저도 그렇고 치열하게 산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 세대다. 저희의 모든 것을 소모해야 한다.”
= 마지막 트랙 ‘마음은 언제나 여러개가 있지’는 앞의 곡들과 결이 다르다. 정서적으로는 ‘오늘따라’, ‘거리에서’에 이어지는 시퀄 같다. 
“아,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다. ‘오늘따라’가 가장 오래된 곡이고, ‘마음은 언제나 여러개가 있지’가 가장 최근에 쓴 곡이기도 하고. 이 곡은 슬프고 힘든 순간에도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이 찾아드는 모습을 담았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감정이 동시간에 있을 수 있는 거다.”
= 그런데 곡 중간에 왜 화자가 ‘혹시나 내 마음 알아차린다면 정말로 모른 체 해줄래요’라고 하나. 
“남에게 보여지지 않고 싶은 모습이 있다. 속마음을 직접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하지만 끝에 가서는 ‘이것만큼은 진심이에요’라고 한다. 역시 제 염세적인 포인트와 맞닿은 곡이다.”
= 정말 꾹꾹 눌러담아 쓰고 부르는 뮤지션인 것 같다. 올해 일정은.
“17일에 생기스튜디오(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단독공연이 있다. 이번 앨범 연주자들도 함께 공연에 참여한다. 사실 사뮈는 대외적으로는 솔로이지만, 베이스 치는 배상언 형처럼 다들 멤버로 생각하고 있다. 사뮈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앨범 이후에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 앞으로 어떤 음악을 계속 할텐가. 
“다양한 장르로 앨범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록 기반에 포크적인 장르지만, 그 외 장르로도 풀 수 있는 방법이 많을 것이다. 재즈나 보사노바 등 그쪽 분들과 협업하면 좋을 것 같다. 아, 내년에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음악작업을 많이 할 생각이다. 좋아하는 곡들을 커버하는 형식으로. 그것만으로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 kimkwm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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