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1위라니, 포지션 경계 허문 수베로&하주석 '합작품'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1.03.29 06: 04

 ‘시범경기 1위’ 한화의 수비 시프트가 갈수록 더 포지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유격수가 우중간에 서는 등 내야수 4명 모두 우측으로 이동하는 극단적인 형태까지 보였다. 
28일 대전 한화-롯데전. 6회 롯데 이병규 타석에서 투볼로 타자에 유리한 볼카운트가 되자 한화 유격수 하주석이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 우중간 외야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2루수 정은원이 우측 잔디에, 3루수 노시환이 2루를 넘어 외야 잔디 앞쪽에 자리했다. 1루수 라이온 힐리까지 내야수 4명 모두 우측에 몰아넣은 파격 시프트. 
3구째 공도 볼이 되자 하주석은 뒤로 더 물러섰다. 볼카운트에 따라 조금씩 위치를 옮기며 조정했다. 이병규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가면서 극단 시프트가 해제됐지만 경기 내내 한화 야수들은 좌우로, 앞뒤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지금껏 KBO리그에서 현재의 한화처럼 포지션 경계를 무너뜨린 채 시종일관 시프트를 한 팀은 없었다. 전통적인 위치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서 수비수가 등장해 아웃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진] 28일 롯데전 6회 이병규 타석 때 한화 수비 시프트 /스포카도 중계화면

큰 화제가 되고 있는 한화의 수비 시프트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야구 인생을 대변한다. 내야수 출신인 수베로 감독은 “내 모든 커리어에 시프트가 있었다. 1991년 18살 때 프로 첫 경기에서 다이빙 캐치로 아웃을 잡은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지만 나의 멘토가 전화를 걸어와 ‘그건 좋은 플레이가 아니야’라고 말했다”며 그라시아노 라벨로(Graciano Ravelo)를 떠올렸다. 
한화 수베로 감독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ksl0919@osne.co.kr
지난 2012년 작고한 라벨로는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유소년 야구에 힘을 쏟은 야구인이었다. 수베로 감독은 그를 가리켜 “세상에서 야구 지식이 가장 뛰어난 분”이라며 ‘베이스볼 파파’라고 불렀다. 당시 그는 다이빙 캐치로 들떠있던 18세 내야수 수베로를 향해 “타자에게 유리한 카운트(2B0S)였다. 한두 발 더 오른쪽으로 미리 갔으면 손쉬운 플레이가 됐을 것이다.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다이빙을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멘토의 한마디로 수베로 감독 야구 인생에서 시프트는 일상이 됐다. 그는 “그 이후 야구를 할 때 항상 볼카운트와 볼 배합, 타자 성향과 투수 상태를 보며 수비 위치를 잡았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선수들에게 모든 상황을 고려해 시프트를 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너리그 감독을 거쳐 밀워키 브루어스 수비코치로 강한 시프트를 걸었고, 한화에서도 선수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과정에 있다. 
한화 시프트의 중심에는 유격수 하주석이 있다. 수베로 감독이 “축복받은 재능”이라고 표현한 하주석은 타자의 가장 강한 타구가 자주 날아가는 곳에 위치한다. 강한 어깨와 정확하고 부드러운 송구 능력을 갖춘 하주석은 좌우를 넘나들며 내야, 외야 사이 깊숙한 곳에서 시프트 전체를 지휘한다. 
한화 유격수 하주석이 더블플레이를 연결짓고 있다. /cej@osen.co.kr
수베로 감독과 조성환 수비코치가 각종 자료와 경기 상황에 따라 덕아웃에서 사인을 보내지만 기본적인 위치는 선수들이 스스로 잡는다. 유격수 하주석이 2루수 정은원과 3루수 노시환의 위치까지 잡아준다. 노시환은 “경기 전 감독님과 미팅도 하지만 선수들끼리도 시프트 이야기를 계속 나눈다. 내야는 주석이형이 거의 80~90%를 리드한다. 가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을 때 주석이형에게 물어본다. 주석이형도 엄청 복잡할 것이다. 자기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전체를 잘 리드해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주석은 “감독님과 수비코치님 리드로 볼카운트나 공의 구질, 위치에 따라 수신호를 주면서 조금씩 위치를 옮긴다”며 “감독님이 내야 리더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셔서 리드를 많이 하려 한다. 내가 헷갈릴 때는 옆에서 은원이나 시환이가 도움을 준다.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하다 보니 재미있고, 공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된다. 올해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고 기대했다. 
한화 하주석-노시환 /jpnews@osen.co.kr
한화는 28일 롯데전을 2-0으로 승리, 시범경기 5승1패로 단독 1위에 등극했다. 이날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도 시프트로 잡아냈다. 신용수의 날카로운 직선타를 정상 위치보다 뒤쪽, 외야와 내야 경계에 자리한 3루수 노시환이 점프 캐치했다. 노시환은 “주석이형이 한 발 앞으로 당겨라고 했는데 마침 딱 그 자리로 공이 왔다. 서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적응해나가는 것 같다”며 시프트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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