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 1958’ 31세 최불암 ‘노련’-40세 이제훈 ‘경박’ 비교 쏠쏠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4.20 13: 46

[OSEN=김재동 객원기자] “문화방송의 연속드라마 ‘수사반장’에서 서형사 역으로 8년동안 장기 출연해 온 탤런트 金湖廷(김호정)씨가 7일밤 9시반 서울한강성심병원에서 뇌출혈로 숨졌다.”
1978년 8월 8일자 동아일보 ‘수사반장 서형사역 김호정씨 사망’ 제하의 부고기사다.
중학교 재학시절 이 기사가 많이 슬펐던 기억이 있다. 부고기사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수사반장’이 국민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십자놀이, 오징어놀이, 다방구 등을 하면서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하며 이 드라마의 시그널뮤직을 읊조리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기도 했었다.

서스펜스를 한껏 살린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의 봉고리듬을 앞세운 시그널뮤직과 김상순, 조경환, 김호정과 그 후임 남성훈 등의 배우들 인기도 높았지만 압권은 박영한 반장역 최불암이었다.
관자놀이에 희끗희끗 백발 몇 올이 드러나는 짙은 밤색의 숱 많은 머릿결, 이마 양 옆을 가로지르는 도드라진 주름 몇 개,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급할 것 없는 호흡으로 빨아들이고 내뿜는 담배연기, 다림질을 신경 안 쓴 트렌치코트 등등.
전설의 드라마 ‘수사반장’의 박영한은 시작부터 중후했다. 그리고 시작점의 박영한을 연기한 배우 최불암은 당시 나이 31세였다.
경기지역 소도둑 검거율 1위란 타이틀에 자부심 충만한 젊은이. 양조장집 아들로 추어주면 추어주는대로 술사기도 좋아하는 호인. 범인 잡자면 거지 분장, 땅군 행세도 못할 것 없는 열혈남아. 하숙집 주인 여자를 삽시간에 엄앵란 급으로 띄워줄 줄 아는 립서비스의 달인.
MBC가 19일 새로 선보인 금토드라마 ‘수사반장 1958’(극본 김영신, 연출 김성훈)의 박영한은 경박이 통통 튄다. 그 박영한을 연기하는 이제훈은 만 나이 40이다. 31세 최불암에 관한 중후한 기억은 40세 이제훈의 가벼움과 만나며 색다른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수사반장 1958’은 1971년 3월 6일 첫 방송된 후 1989년 10월 12일까지 880회를 방영한 MBC의 간판드라마 ‘수사반장’의 프리퀄이다. 박영한을 비롯한 멤버 김상순(이동휘 분), 조경환(최우성 분), 서호정(윤현수 분) 등이 ‘수사반장’ 속 서울시경 특별수사본부에 정착하기 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먼저 박영한은 경기도 황천지서의 포도대장이다. 지역신문에 세차례나 기사가 날만큼 높은 검거율로 서울 종남경찰서 수사 1반으로 차출된다. 하지만 정작 와 보니 반장 유대천(최덕문 분) 빼고 반원은 달랑 저 하나. 팀원 보강이 시급함을 체감한다.
현재는 종남서 수사 2반원인 김상순은 수틀리면 사람도 물고 개도 무는 ‘나 홀로’ 파다. 비리로 먹고 사는 동료 반원들이 보기 싫어 전부를 따돌리다 박영한의 눈에 든다.
조경환은 종남시장 쌀가게의 일꾼이다. 임꺽정 같은 괴력의 소유자로 동대문파 깡패들을 다루는 모습에 반해 박영한이 스카우트한다.
서호정은 유학 준비중인 한주대 대학생이다. 세기의 강도 커플 보니와 클라이드를 사살한 텍사스 레인저 프랭크 해머 같은 수사관이 되고 싶던 차에 박영한의 제안을 받고 종남서 수사 1반에 합류한다. 공채 없이도 그런 채용이 가능했던 어수룩한 세월이었다.
‘수사반장’은 시추에이션 드라마였다. 회별로 사건이 진행됐고 매회 범인과 피해자의 사연을 담아 휴머니즘을 부각 시켰었다. 주인공 역 최불암은 ‘수사반장’의 인기에 대해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물 이전에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고발 드라마였기 때문이었다. 또 사회의 막힌 곳과 그늘진 곳을 파헤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이었다. 주인공 박 반장도 수사관이라기 보다는 집안의 큰 어른이었고 정의를 세우는 한국판 보안관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1회까지 멤버 구성도 못 끝낸 ‘수사반장 1958’이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포맷을 따를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단은 이정재, 임화수로 대변되는 동대문사단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경찰 수뇌부가 수사 1반의 대척점에 선 모양새는 확인됐다.
이정재, 임화수의 사형으로 동대문사단이 해체되는 5.16 군사정변까지는 3년이 남았다.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전개되더라도 이들의 메인 빌런 포지션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박영한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인 최중락 전 서울경찰청 강력과장은 1929년생으로 경찰 재직 40여년 동안 1천3백여명의 강력범을 체포한 강력수사의 전설이므로 상황 부족, 소재 고갈을 우려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1950년대식 아날로그 감성을 연출과 배우들이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다. 해당 시대를 그려냈던 선배 수사반장 팀에 비해선 상대적인 어려움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1회에서 보여줬던 우시장 풍경이나 전철과 기마경찰 등의 세트적 감수성과 영악하지 못한 순진한 시대 정서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며 젊은 배우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휴머니즘을 성공적으로 그려내길 기대해 본다. 다시 한번 이 시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효자손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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